“장차 올 세상”은 복음의 핵심이다

/ 로이드 존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히 2:5)

 

 

“이같이 큰 구원”의 목표가 무엇인가? 복음은 장차 올 놀라운 세상에 대해 알려 주는 메시지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모든 복을 가리키되, 주로 장래 일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히 2:8). 만물이 그에게 복종할 세상이 장차 올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구원의 핵심에 있는 사실이다.

 

복음의 모든 유익 주에서도 가장 놀라운 유익들을 저 자신이 오랜 세월 놓쳤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두려운 마음이 든다. 구원을 주로 개인적인 체험 내지 주관적인 상태나 상황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탓에 그렇게 놓치는 것이다. 복음은 개인적인 체험에 앞서 온 세상에 일어날 일을 알려 준다. 개인적인 측면을 다루기에 앞서 우주적인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구원을 그렇게 좁게만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세상이 이 모양이 된 것은 인간의 죄와 불순종 때문이다. 인간이 타락하면서 불행과 고통이 세상을 채우게 되었다. 질병과 죽음과 싸움과 불일치와 혼돈이 찾아왔다. 그러므로 “이같이 큰 구원”과 관련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이처럼 죄로 망가진 세상에 조처를 취하셨다는 사실, 이와 다른 세상이 장차 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문제는 친히 만드신 후 완전하고 좋다고 선언하신 세상, 그런데 죄가 망쳐 버린 세상에 어떻게 찾아오시느냐 하는 것이었다. 세상을 원래 의도하신 바대로,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놀랍게 회복시키려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구원은 바로 이 문제와 관련된 일이다. 이 구원 안으로 들어갈 때, 자기 자신이나 자기 기분이나 자기 마음상태에 몰두하던 차원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즉시 자기 자신을 영원한 세상에 속한 천국 시민으로 바라보게 된다.

 

하나님이 만드실 새로운 세상이 있다. 성경은 그가 큰 계획과 방안을 가지고 계신다고 말한다. 영광과 경이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드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 세상에는 죄도 없고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다. 아픔도 없고 질병도 없다. 다툼도 없고 싸움도 없다. 지금은 대립하는 짐승들이 그때는 한 자리에 누울 것이다. 평소 굶주리고 난폭했던 짐승들이 어린아이의 손에 이끌려 다닐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제시하는 그림, 신약성경 뿐 아니라 구약성경이 제시하는 그림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선지자들도 장차 올 세상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장차 이루어질 놀라운 일을 일부 보았다. 주님도 자주 그 세상에 대해 가르치셨다. 자신이 다시 와서 만물을 새롭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자신이 세우실 나라와 그 나라에 일어날 놀라운 일들에 대해 늘 이야기하셨다. 그 나라에는 이삭과 아브라함이 앉아 있을 것이며, 다른 이들도 와서 놀라운 영광을 누릴 것이라고 하셨다.

 

신약성경에는 계속 그 나라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베드로도 자주 그 나라에 대해 전했다. 오순절 이후 예루살렘에서 설교할 때도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르러 영광과 경이로 가득 찬 나라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행3:19). 사도 바울도 역시 그 나라를 계속 고대했다.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우리 영혼을 죄에서 구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빌3:21). 계시록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하나님의 성이 찬란하고 경이롭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이미지로 장차 올 세상을 묘사한다.

 

구원의 목표는 이처럼 만물을 새롭게 하심으로 지금 우리가 아는 세상과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드시려는 것, 그런 세상이 오게 하시려는 것이다. 베드로는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이 온다고 하면서(벧후3:13), 그 나라를 고대하며 앞당길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했다.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그 큰 날에 일어날 한 가지 놀라운 일은, 사람이 그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리게 된다는 것이다. 다윗은 시편8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들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으니”(시8:4-5).

 

이것은 장차 올 놀랍고 영광스러운 새 세상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다. 그때 사람은 피조세계의 주인이 될 것이다. 세상을 심판할 것이다. 그렇게 높아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반복하건대,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첫 번째 핵심 진술이다. 복음의 일차적 목적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 몇 가지 일을 해주려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일도 해주지만, 그보다 앞서며 그것을 넘어서는 엄청난 구상과 영광스러운 전망을 제시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이처럼 세상을 속량하시고 구원하시며 죄와 그 모든 결과에서 해방시키시려는 것이다. 온전하고 영광스럽게 만들어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려는 것이다.

 

이 주제를 살펴보면서 발견하게 되는 사실은 히브리서 기자가 “이같이 큰 구원”을 말하기 위해 아주 신중하게 단어를 선별한다는 점이다. 구원은 우주적인 계획이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고” 화목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고(엡1:10),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그런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그 나라를 세우시고 완성하시기 위해, 마침내 그 나라를 이루시고 완결하시기 위해 오셨다. 하나님의 성은 흠 한 점 없이 완전무결한 곳이 될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낙원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죄가 들어와 망쳐버렸다. 하나님은 그 세상을 회복하고 재건하여 원래 의도하신 세상,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만드실 것이다. 계시록을 읽되, 특히 21장과 22장을 읽어보시라. 이 모든 말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장차 올 완전한 세상을 향유하는 주체가 천사가 아닌 사람이라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천사가 아니면 누구한테 복종하게 하신다는 것인가? 사람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이다. “이같이 큰 구원”, 영광의 잔치, 장차 올 세상의 잔치가 저와 여러분 같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불순종과 어리석음으로 고통과 아픔과 혼란과 적의와 전쟁과 삶의 모든 공포 및 죽음 자체를 자초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우리를 위해 “장차 올 세상”이 준비되고 있다고, 한 번도 제자리를 이탈한 적 없는 거룩한 천사들,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저 밝은 천사의 영들이 아닌 우리를 위해 준비되고 있다고, 그러니 이 구원이 얼마나 큰 것이냐고 히브라서 기자는 말한다!

 

이 말이 동화처럼 들리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복음을 믿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의 핵심에 있는 사실이다. 영광의 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할 것이다. 땅이 새로워지고 갱신될 때, 물질들이 타오르는 불의 뜨거운 열기에 풀어질 때, 모든 죄와 악과 불순물이 제거되어 온 세상이 완전해지고 의로워질 때, 그 새로운 땅 위를 거닐 것이다. 빛 가운데, 그의 찬란한 얼굴 빛 가운데 행할 것이다. 아들의 벗이 될 것이다. 하나님을 뵙고 즐거워할 것이다. 지금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라고 노래하며 외치고 있는 거룩한 천사들이 수종을 받을 것이다(사6:3).

 

이것이 기독교 복음이다. 영광스러운 상태에서 하나님을 살짝 본 자가 전해 준 메시지이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은 형언할 수 없는 영광 가운데 살 것이며, 영원토록 그의 거룩함 임재 안에서 지낼 것이다.

 

- 로이드 존스, ‘히브리서 강해’, PP 84-90

출처: 청교도의길

 

출처: 자기부인 ..글쓴이..바퀴

 

 

{ 성경의 난제를 푸는 비결 / 천국 영광의 광장 }| 제시카윤 목사 | 잠근동산 | 덮은우물 | 봉한샘 | 저자 | 미국에서 나이롱 목사가 깨어지는 이야기 - YouTube

 

 

[로이드 존스, '교리강좌 3']

/ 재림; 서론

 

 

1. 재림에 대해 고찰해야 하는 이유

 

1) 성경이 수없이 재림을 언급하고 있다

 

재림은 엄청나게 중요한 주제다.

 

- 성경의 30분의 1은 재림에 대한 언급이다.

- 초림에 대한 언급 1번에 재림에 대한 언급은 8번의 비율이다.

 

2) 주님 자신이 재림을 가르치셨다

 

마 24장과 25장은 이 교리만을 다룬다.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는 오직 이 주제를 위해서 쓰여졌다?

주님 자신이 재림을 강조하셨으며, 자주 언급하셨다.

마 24, 25장, 막 13장, 눅 21장.

 

알베르트 슈바이쳐- <역사적 예수의 탐구>에서 복음서는 재림에 대한 예수님의 묵시적 가르침을 끊임없이 강조한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19세기 말 20세기초에 유행한 신학적 분위기는 모더니즘 혹은 자유주의로서 ‘예수’를 ‘역사적 예수’와 ‘바울의 그리스도’로 대비시켜 말했다.

 

자유주의자들은 묵시적 요소들을 빼버렸다. 예수는 도덕과 윤리, 행동과 행위만 가르쳤다고 했다. 역사적 예수를 재구성하고 있다고 하면서 모든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것들을 제거해 버렸다. 이에 대해 슈바이처는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고, 이후 교회의 역사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자유주의자들의 소위 ‘역사적 예수’를 뒤엎어 버렸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복음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3) 사도들도 재림을 가르쳤다

 

사도행전 첫 장부터 이 주제를 만나게 된다. 주님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질문에 답하였다(7절).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서신서에서도 주님의 재림에 대한 가르침을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베드로는 벧후 3장에서 바울에 대해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주님의 날)이 임함에 관하여 말하였으되”라고 한다. 그들은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바울서신, 야고보서도 요한서신과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다.

 

이 교리는 모든 시대의 교회에서 순교자들과 믿음을 고백하는 자들을 격려해 주었다. 그것은 복된 소망이자 교회가 고대하는 것인 동시에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가장 큰 동기가 된다. 베드로,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벧후3:17).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11-12)

 

2. 재림의 교리가 소홀히 여겨지는 이유

 

1) 영적 무기력

 

우리는 삶과 환경에 희생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낙심시키고 우리 삶을 다른 일들로 가득 채워서, 이 복된 소망을 잊어버리게 하려 애쓰는 원수와 대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교리는 핍박과 환난의 때에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 이 세상의 헛됨을 알게 될 때만 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

 

2) 재림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들

 

거짓 관점과 개념들 때문이다.

1설, 재림-죽음 가운데 데려가시기 위해 오시는 것(요14:1-3)

2설, 재림- 오순절날 교회 위에 그리고 교회 안에 임했을 때 일어난 일.(요14:17-18)

 

주님이 성령을 통해 영적으로 오신 것으로 해석.

 

3설,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파괴 사건으로만 해석하는 것. 주님의 오심을 유대 민족의 국가가 멸망하는 것에 국한시킨다.

 

3) 그리스도인들의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

 

터무니없는 가르침에 대한 소심함과 신중함.

 

수세기 동안 재림의 날짜를 독단적으로 예언하곤 했다. 이런 가르침들의 별난 생각과 과장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재림의 교리를 전혀 고찰하지 않고 내버려 둠으로써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말하게 되었다.

 

이론을 만들어 내어 그것을 정통성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베드로의 말처럼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일이다(벧후 3:16).

 

3. 재림의 문제에 접근하는 바른 자세-균형

 

신중한 것이 옳은 일이기는 하지만, 신중함이 그 문제를 완전히 피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주제에 대해 균형 있게 읽는 것이 지혜롭다. 먼저 성경을 읽으라.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읽으라. 양쪽 입장 혹은 모든 입장의 글을 읽으라. 한쪽 입장의 글만을 읽는 것은 대단히 비극적인 일이다.

 

똑같이 경건하고 똑같이 학구적인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면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읽고 최선을 다해 검토해 보아야 한다. 경고- 이 교리에 관해 균형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라. 배타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거룩함에 관련된 운동을 조직하거나 재림과 관련된 운동을 조직하는 사람들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겠다. 모든 교리는 결합되어야 한다. 한 가지만 전파하기 위한 운동을 조직한다면 당신은 결국 균형을 잃을 수 밖에 없다. 교회는 언제나 모든 교리를 전파해야 하며 특정한 교리들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4. 재림에 대한 서론적 접근

 

1) 재림과 연관해 사용한 용어들

 

묵시(apocalypse)- 계시, 수건을 벗기는 것, 벗겨진 수건의 개념

 

현현(epiphany)- 나타남 혹은 드러남

 

묵시는 우리 주님이 서 계시고 그 앞에 장막이 쳐 있다가 그 장막이 거두어져 우리가 주님을 보게 된다는 개념이다. 현현은 주님의 오심, 주님의 나타나심을 강조한다. 파루시아(parousia)- 임재. 주님이 그의 백성에게 다시 오셔서 임재하시는 것.

 

하나님의 날- 벧후3:12, 주의 날- 살전5:2, 벧후3:10

주 예수의 날 혹은 그리스도의 날- 고전3:13

이 용어들은 상호 교환하여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2) 재림이 일어나는 방식

 

1 인격적인 오심이다.

2 영적인 것일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 오신다.

 

영적인 오심- 오순절날 성령을 통해 오심,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시에 심판 가운데 “주님의 오심”, 지금도 여전히 영적으로 오심, 부흥의 때에 특별한 방식으로 교회에 오심,

 

육체적 오심- 재림 교리. “이 후에 인자가 --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26:64).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0-11).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8) 초림과 재림은 둘 다 육체적인 것이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계1:7)

 

3 재림은 가시적인 사건이다.

 

비밀스럽고 보이지 않는 사건으로서의 재림은 완전히 비성경적이다.

 

4 재림은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번개의 번쩍임에 비유(마24:27). 도적이 밤에 오는 것에 비교(마24:43).

 

5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이다.

 

영광중에, 하늘 구름을 타고, 천사들과 함께 오실 것이다. “나팔 소리가 나매”(고전15:52) 왕의 왕, 주의 주로 오실 것이다.

 

재림에 대한 연구는 우리를 경건으로 인도한다.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 거룩한 삶을 촉진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3) 재림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당부의 말

 

그 연구가 여러분을 겸손하게 만든다면 당신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우쭐하게 되고 지성과 열정이 자극된다면 그것은 잘못된 연구 방식이다.

 

그 연구가 당신으로 하여금 무릎 꿇고 에배와 경배와 찬양을 드리게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방식의 연구이다. 그 일을 해냈다는 자기 만족감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연구방식이다. 이것은 지성만이 아니라 전인격을 위한 주제이다. 그것은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이 영광스러운 진리에 올바른 방법으로 접근하게 되기를 빈다.

 

출처 / 자기부인 / 바퀴

 

http://blog.daum.net/dfgiyo/6139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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